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물 마립간 (문단 편집) == 《[[삼국사기]]》 기록 == [include(틀:삼국사기)]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42680&cid=49615&categoryId=49798|《삼국사기》 〈내물 이사금 본기〉]]''' 一年夏四月 나물 이사금이 즉위하다 二年 환·과·고·독을 위로하고, 효제에 특별한 사람을 포상하다 三年春二月 시조묘에 제사지내다 七年夏四月 나무가 가지를 서로 잇다 九年夏四月 왜병이 쳐들어오자 이를 물리치다 十一年春三月 백제 사람이 와서 예방하다 十一年夏四月 물난리가 나서 산이 무너지다 十三年 백제 왕이 좋은 말을 바치다 十七年 가물고 흉년이 들자 사자를 보내 진휼하다 十八年 백제의 독산성주가 신라로 투항하다 十九年夏五月 서울에 물고기가 비에 섞여 떨어지다 二十一年秋七月 뿔이 하나 달린 사슴을 바치다 二十四年夏四月 작은 참새가 큰 새를 낳다 二十六年 위두를 전진에 사신으로 파견하다 三十三年夏四月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三年夏六月 또 지진이 일어나다 三十三年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다 三十四年春一月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다 三十四年春二月 흙비가 내리다 三十四年秋七月 누리의 피해로 곡식이 여물지 않다 三十七年春一月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고구려에 보내 볼모로 삼다 三十八年夏五月 왜인이 와서 금성을 포위하자 독산에서 대승을 거두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언급된 신묘년(391년)의 다음해(392년)와 그 이듬해(393년)에 해당된다.] 四十年秋八月 [[말갈]]이 침입하자 이를 물리치다[* 다만 이 말갈은 훗날 [[여진족]],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퉁구스]]계 부족이 아니라, 실제로는 [[동예]] 계통 집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내물 마립간 재위기간에 고구려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강원도 지역에서 신라와 국경을 접하면서 초기 신라와 부딪히는 말갈 기록이 사라진다. [[위말갈]] 문서 참조.] 四十二年秋七月 하슬라[* 지금의 [[강릉시]]다.]에 흉년이 들어 죄수를 사면하고 세금을 감면해 주다 四十四年秋七月 누리가 날아와 들판을 덮다 四十五年秋八月 살별이 동쪽에 나타나다 四十五年冬十月 내구마가 슬프게 울다[* [[광개토대왕릉비]] 영락 10년(400년), [[광개토대왕]]이 50,000명의 대군으로 [[신라-왜 전쟁]]에서 신라를 구원한 해이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김부식]]이 이것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은 낮으며, 대신 《[[삼국사기]]》가 저술된 [[고려]] 중기 기준으로 1,000년 전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고구려의 신라 구원으로 인하여 사실상 고구려의 속국이 된 상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기록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四十六年 봄과 여름에 가물다 四十六年秋七月 고구려에 볼모로 갔던 실성이 돌아오다 四十七年春二月 왕이 죽다 대체적으로 자연재해 같은 안 좋은 기사가 많다. 내물 이사금[* 《[[삼국유사]]》에서는 마립간으로 표기되었다.]부터 《삼국사기》 3권이 시작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